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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목사의 교회사이야기

초승달과 십자가의 전쟁

2017년 11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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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예루살렘
11세기,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아랍 제국은 과학과 철학, 군사력에서 유럽에 필적할 상대로 성장했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로마 기독교와 동쪽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이 두 거대 종교는 중동의 오래된 한 도시에서 충돌한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뜨거운 이 도시는 바로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세계 3대 종교의 공통된 성지다. 유대교도에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산이요, 모슬렘(이슬람 교도)에게는 마호메트가 승천한 장소요,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이 있는 성이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표현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예루살렘 순례는 그들에게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슬람 왕조 셀주크 투르크가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오는가
투르크 족은 그리스도인의 예루살렘 순례를 금지시켰다. 예루살렘을 찾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투르크 족에게 봉변을 당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순례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울분을 토하며 이야기를 전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설상가상으로 이슬람 세력은 동방 기독교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황제는 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잔틴 황제의 편지를 받은 교황 우르반(우르바누스) 2세는 생각했다. ‘때가 됐다!’



교황, 전쟁을 시작하다
교황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슬람과 싸워 예루살렘을 되찾는다면 명실상부한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교황은 대규모 전쟁을 결심했다. 수천 ㎞ 떨어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야 했다. 이 멀고 먼 원정은 질병과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서 전쟁에 참여해야 할 만큼 강력한 동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심을 자극해 이교도에 대한 분노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가였던 교황 우르반(우르바누스) 2세는 유럽 교회를 향해 호소한다.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동방의 형제 교회를 구해야 한다! 거룩한 땅 예루살렘을 더럽히는 야만족을 물리치고 성지를 되찾으라!”
교황의 간절한 호소에 청중은 감동했다. 이교도를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호전적인 영주들은 피가 끓어올랐다. 모험심과 정의감에 불타는 기사들은 칼을 빼 들었다. 상인들은 동방의 향료와 보석을 얻을 생각에 가슴이 뛰었고, 노예들은 새로운 신분을 얻을 소망에 부풀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군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가슴에 새겨 넣은 이 특별한 군대의 이름은 십자군! 유럽과 아시아의 대결이었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이었다. 두 신앙 가운데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제1차 십자군 전쟁 : 성지를 되찾다
1096년, 첫 번째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했다. 용맹한 노르만 족이 앞장섰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이슬람 군대의 습격에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철갑 옷으로 무장한 십자군 병사들은 살인적인 더위와 갈증과도 싸워야 했다. 3년에 걸쳐 장장 5천 ㎞에 이르는 행군을 하는 동안 군사는 4분의 1로 줄었다.
1099년,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산 위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자 지쳐 있던 병사들의 가슴이 끓어올랐다. 십자군 전쟁의 절정을 이루는 전투가 시작됐고, 1099년 7월 15일 마침내 예루살렘이 무너졌다. 성안에 있던 이슬람 사원의 초승달은 제거됐고 십자가가 세워졌다. 기적 같은 승리였다. 이어 이교도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뒤따랐다. 성안에 있던 3만 명의 주민 모두가 처형된 것이다. 십자군의 잔혹한 예루살렘 탈환은 이슬람 세계를 자극했다.



제2차 십자군 전쟁 : 이슬람의 반격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슬람은 반격을 시작했다. 1144년, 기독교 영토였던 에데사가 이슬람에게 넘어갔다. 빼앗긴 에데사를 되찾기 위한 두 번째 십자군이 소집됐다. 프랑스 왕 루이 7세가 앞장섰고, 3만 명의 십자군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슬람의 거센 반격에 부딪혀 예루살렘에 가 보지도 못하고 철수했다.
이 시기에 이슬람 역사에 빛나는 영웅이 등장한다. 아랍 세계를 통일한 이슬람의 지도자, 술탄 살라딘이다. 1187년, 십자군은 맹렬한 살라딘에게 다시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만다. 살라딘은 바위 사원에서 십자가를 떼어 내 기독교를 모욕했다.


제3차 십자군 전쟁 : 사자왕 리처드 vs 술탄 살라딘
수치스러운 패배 소식을 들은 교황은 3차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다. 1189년에 시작된 3차 십자군 전쟁에는 서유럽 최고 지도자들이 동참했다. 사자왕이라고 불렸던 중세의 전설적인 영웅 리처드 1세가 선봉에 섰다. 살라딘은 아랍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화약 폭탄을 개발했다. 용맹한 두 전쟁 영웅은 1년간 서로 대치하며 싸웠지만,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휴전 조약을 맺었다.


제4차 십자군 전쟁 : 형제의 싸움
이노센티우스 교황이 주도한 4차 십자군은 이집트 원정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동방의 형제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이것은 목적을 상실한 전쟁이었다. 십자군은 1204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비잔틴 제국의 해안과 섬을 차지했다. 겉으로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으나 두 교회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200여 년간 계속된 세기의 전쟁은 그렇게 마무리됐지만, 끝내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종교를 이용한 전쟁
종교의 이름으로 진행된 이 전쟁의 그늘에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숨어 있다. 교황과 로마 교회는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교리를 악용했다. 교황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영생과 구원을 약속했다. 십자군은 이 전쟁에서 죽는 것을 순교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새겨질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지상의 예루살렘을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착각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피의 전쟁이 끝난 후였다. 십자군 전쟁은 신앙의 이름으로 헛된 욕망을 일으켰고, 교회는 전쟁을 위해 구원을 팔았다는 오명을 남겼다.Q


참고 자료 : CSTV 다큐멘터리, <십자군 전쟁>
허버트 조지 웰스, 『H. G 웰스의 세계사 산책』

Vol.60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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