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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목사의 교회사이야기

미켈란젤로를 만나다

2017년 12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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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이 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후, 유럽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13세기 유럽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동방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에 의해 멸망하자 동방의 학자들이 서유럽으로 피신했고 이들에 의해 새로운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로마 교회의 지배를 받던 유럽 지식인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 그들은 인간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새로운 책을 내려면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어야 했기 때문에 책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인쇄 혁명
1446년, 독일의 한 금 세공업자가 구리를 녹여 금속 활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구텐베르크라 불리는 청년이 이룬 업적은 시대를 바꾸는 큰 불씨가 됐다. 고요하지만 거대한 변화였다. 엄청난 양의 책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유럽 전역에 출판사가 세워지고 도서관이 건립됐다. 유럽 전체에 10만 권에 불과했던 책의 숫자는 인쇄술 발명 이후 9백만 권에 이르렀다. 이제 누구나 쉽게 책을 만나고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위대한 고전 작품을 오류 없는 인쇄본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대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원했던 열정에 불꽃을 붙인 격이었다. 유럽은 중세라는 이름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르네상스라 불리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서막
더 이상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고대 로마 문명은 유럽인들에게 여전히 로망이었다. 이탈리아는 로마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제국의 오랜 수도였던 로마는 고대 유적으로 가득했다.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건축물과 조각상은 고대 로마 문명에 대한 향수와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욕구로 충만한 도시였다. 이탈리아의 지성인들은 위대한 인간의 학문과 예술을 통해 로마 교회가 중심이었던 중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이들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문주의’의 탄생이었다.


원천으로!
라틴어 ‘ad fontes’는 ‘원천으로’라는 뜻이다. 맑은 시냇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상류로 올라가야 한다. ‘유럽 문명이 시작된 고전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을 담은 이 말은 르네상스의 슬로건이 됐다.
이제 로마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는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됐다. 중세 말, 로마 교회는 더 이상 유럽인들에게 꿈과 이상을 제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고대의 문학 작품을 고대 원어로 읽고 연구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재발견
고전의 힘은 강력했다. 사람들은 교회가 중심이던 중세 시대의 신 중심적인 가치관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본질을 다시 보게 됐다. 인간을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들에게 중세 로마 교회는 융통성 없고 과거 전통에 매인 옛 질서였다. 유럽인들은 로마 기독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유럽 사회에 활력 넘치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문학과 예술의 전성시대
문학과 예술이 폭발적으로 부흥한 시대가 도래했다. 르네상스 문학가들은 로마 교회를 비판하고 인간의 사랑과 가정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신곡』이라는 서사시를 쓰면서 로마 교회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 지방 언어를 사용해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통해 중세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을 새롭고 세밀하게 묘사했다. 르네상스 예술의 절정은 미술가들에 의해 이뤄졌다.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천재 미술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약한 다빈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가이자 과학자이며 수학자요 천문학자였다. 동시에 도시 건축가였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과 같은 세기의 미술 작품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 구조를 세밀하게 연구했고, 탁월한 수학적인 연구로 업적을 남겼다.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그는 로마 교회가 통제했던 미술계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은 천재였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천재 화가가 한 명 더 있다. 1475년 이탈리아 카프레세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90년을 살면서 위대한 작품을 무수히 남긴 르네상스 미술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재능을 탐낸 교황은 그에게 교회 그림과 조각을 맡겼다. 이 천재의 스케치북은 바티칸 성당의 벽과 천장이었다. 아담의 창조를 그린 <천지창조>, 예수님을 품에 안은 마리아를 묘사한 <피에타>,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을 표현한 <다비드상>은 성경 이야기와 인물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육체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인문주의 정신을 담은 르네상스 미술의 절정을 이룬다.



르네상스, 알프스를 넘다
16세기가 되자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된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을 통해 로마 교회의 타락을 비판한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세계적인 문호인 셰익스피어는 세기의 비극인 『햄릿』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묘사했다. 에스파냐의 세르반테스는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 평가받는 『돈키호테』에서 중세의 기사를 풍자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르네상스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중세라는 이름의 거대한 빙하가 녹기 시작했다. 중세 로마 교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와 세계관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유럽 사회의 모든 영역이 변했다. 그리고 가장 변화가 필요한 곳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회였다.Q


참고 자료 :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이강무,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Vol.61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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