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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흥의 시대

2018년 04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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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6세_혁명실화냐? #부흥이란것이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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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
크고 빠른 범선의 제조 기술, 나침반의 발명과 항해술의 발전. 이제 인류는 더 이상 바다가 두렵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바다 건너편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바다로 나섰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무역지를 찾기 위한 모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후추, 커피, 사탕 등 동양의 신비로운 특산품에 유럽인들은 매료됐다. 인도는 유럽과 동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효과적인 무역을 위해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는데, 영국은 1600년도에 가장 먼저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다. 영국은 계속해서 인도뿐 아니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를 통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다. 17세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신대륙 아메리카까지 대영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변화하는 유럽 교회
17세기 말 유럽 교회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와 맞서야 했다. 루터의 후예인 독일 교회는 엄격한 정통 신학에 집착하다 보니 개인의 삶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슈페너는 성도의 경건 생활을 강조하는 신앙 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경건주의 운동으로 확산됐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존 웨슬리(1703~1791년)가 이 운동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1736년, 선교를 위해 배에 오른 웨슬리는 폭풍을 만나게 되고, 공포에 질려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평안한 표정으로 시편을 암송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모라비안 경건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모습에 도전을 받은 웨슬리는 체험을 강조하는 신앙 운동을 시작한다. 그는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가에서 ‘홀리 클럽’(Holy Club) 모임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을 이끈다. 신앙과 경건의 방법을 강조하는 이들은 ‘방법론자’(Methodist)라는 별명을 얻었다. ‘감리교’라는 새로운 교단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유럽의 각성 운동은 바다 건너 신대륙으로 이어졌다.


잠들어 있는 신대륙의 교회
18세기가 시작됐을 때, 아메리카의 개신교는 겨울잠에 빠진 곰과 같았다. 신대륙에 첫발을 디뎠던 청교도들의 열심은 10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시들해져 있었다. 경제는 발전했고 삶은 부유해졌지만, 교회 성도는 점점 줄어갔다.


열정적인 천재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
1734년 겨울,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의 교회에서 한 목회자가 설교를 시작했다. 과장된 몸짓도, 화려한 표현도 없이 그저 원고를 읽어 나갔다. 그러나 그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벅차오르는 감격과 말할 수 없는 은혜로 충만해졌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는 영적인 잠에 빠져 있던 성도들을 깨우는 알람과 같았다. 그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자, 수백 명의 청교도 후예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노샘프턴에서 솟아오른 부흥의 불길은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Movement)이라 불리는 위대한 부흥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인 출신의 순회 설교자, 조지 휫필드
조지 휫필드(1714~1770년)는 찰스 웨슬리의 하인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강력한 설교로 인해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휫필드의 설교는 신대륙의 부흥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일곱 번이나 미국을 방문해 수많은 청중에게 설교했고, 광부들에게 찾아가 설교하기도 했다. 1740년 뉴잉글랜드에서 6주간의 전도여행을 통해 이전에 없던 대부흥이 일어나게 됐다. 교회들은 성도로 넘쳤고, 수많은 종교 단체와 교육 기관들이 세워졌다.


대각성 운동, 시대를 깨우다
대각성을 주도했던 목회자들의 설교가 시작되면 수천, 수만 명의 청중이 모였다. 수용할 건물이 부족해 야외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시작되면 술집이 텅 비고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교회의 각성은 대부흥으로 이어졌고, 사회의 변화로 연결됐다. 잠들었던 교회가 깨어나자, 잠들었던 시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자유를 꿈꾸다
영국 정부가 식민지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홍차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자 수입이 줄어들게 된 식민지의 상인들은 폭발했다. 홍차를 실은 영국 화물선들이 보스턴 항구에 도착하자, 식민지 주민들은 화물선에 올라 차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영국 정부가 사건의 주동자를 체포하려 하자 양측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1775년, 렉싱턴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을 상대로 시작한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13개 주의 식민지 연합 군대와 영국 군대의 전투는 8년간 계속됐고, 영국 군이 요크타운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완전히 기울었다. 1776년, 독립 선언문이 발표됐다. 이제 영국은 더 이상 미국을 식민지로 다스릴 수 없게 됐다.


프랑스,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다
미국의 독립은 유럽의 지각 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프랑스의 절대 왕정은 강력한 왕권을 꿈꿨던 유럽 군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왕족들의 화려한 삶은 평민들의 고통을 의미했다.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해 파산할 지경에 이른 프랑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금을 거두는 것이었다. 이는 불만으로 가득 찼던 민중들에게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귀족, 성직자, 평민의 대표인 삼부회가 개혁안을 제출했지만, 루이 16세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무기를 얻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왕정의 몰락과 근대 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이 사건을 프랑스 혁명이라 부른다. 왕실과 귀족의 특권은 폐지됐고, 농노들은 해방됐다. 루이 16세와 사치스러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To be continued..
대각성 운동은 독립과 혁명의 기초가 됐고, 성경의 사상은 민주주의와 노예 제도 폐지로 이어졌다. 기독교 사상을 기반으로 하버드 대학(1636년), 예일 대학(1701년), 프린스턴 대학(1746년)이 설립돼 기독교의 가치와 과학 탐구에 몰두했다. 이처럼 18세기 대각성 운동은 교회의 대부흥을 넘어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 출발의 씨앗이 됐다.
이렇게 북아메리카에서 이뤄진 대각성과 부흥의 열기는 지구 반대편 동방의 작은 나라로 이어졌다. 대부흥의 새로운 무대가 된 이 나라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땅, 조선이었다.Q

참고 자료: 허버트 조지 웰스,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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