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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목사의 교회사이야기

새로운 대륙을 향하다

2018년 03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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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났다 #지구는둥그니까 #콜럼버스는거들뿐 #뜻밖의바다여행


가톨릭과 개신교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역대급 빅매치였던 30년 전쟁(1618~1648년)이 끝났을 때, 유럽은 황폐해져 있었다. 그렇게, 역사는 중세를 지나 근대로 접어들었다.


근대, 불안한 시작
17세기가 되자 교황과 가톨릭은 이제 더 이상 유럽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새로이 출범한 개신교는 아직 유럽을 장악하지 못했고,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자리엔 과학이 들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경 대신 철학에 매력을 느꼈고, 갈릴레이와 데카르트, 파스칼과 뉴턴이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했다. 영국의 경험주의와 프랑스와 독일의 합리주의는 유럽 기독교의 기초를 약화시키고 있었다. 전환기를 맞이한 교회는 새로운 무대가 필요했다.


지구는 둥글다
이사벨 여왕 앞에 한 이탈리아인 탐험가가 섰다. 그의 이름은 콜럼버스. 새로운 바닷길을 연구하던 그는 서쪽으로 계속해서 항해하면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황금의 나라 인도! 모든 탐험가의 로망이자,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먼 항해를 위해 든든한 후원자가 필요했던 콜럼버스는 여왕을 설득했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지도자로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싶었던 이사벨 여왕에게 그의 말은 솔깃했다.
1492년 8월 3일, 여왕의 지지를 약속받은 콜럼버스는 미지의 항로를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33일간의 거친 항해 끝에 도착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지만, 이는 실은 아메리카 대륙의 한 섬이었다. 이렇게 서인도 항로를 발견한 콜럼버스는 신대륙으로 향하는 바닷길을 연 개척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로써,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가는 바닷길이 열린 것이다.


청교도가 뿔났다
여기는 다시 영국.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나고,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좌에 오르자 청교도들은 기뻐했다. 스코틀랜드는 종교개혁의 영웅이요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낙스의 나라였기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새 왕이 영국을 개신교의 나라로 이끌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왕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을 표준 성경으로 삼는 등 개신교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성공회를 국교로 삼고 청교도를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간주하며 제임스 왕은 청교도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청교도에게 영국 교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조국이냐 신앙이냐를 선택해야 했다. 콜럼버스가 새로운 바닷길을 발견한 지 한 세기가 지난 시점이었다. 청교도는 새로운 땅으로 눈을 돌렸다.


순례의 시작
1620년 9월 16일, 잉글랜드 플리머스항에 모인 102명의 사람들은 상기된 얼굴로 자신들의 운명을 맡길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180톤의 메이플라워호는 당시 영국의 흔한 상선이었다. 30여명의 승무원이 동승했고, 크리스토퍼 존슨 선장이 키를 잡았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거대한 바다 건너편 미지의 대륙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한 이 용기 있는 사람들을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 Fathers)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목적지는 새로운 대륙인 아메리카였다.


신대륙에 도착하다
치열한 항해였다. 거친 풍랑과 치명적인 질병과 싸우며 그렇게 66일이 지났다. 드디어 1620년 11월 21일, 아메리카 대륙 동북부 해안 케이프코드에 도착한다. 해변은 황량했고, 식량은 부족했으며,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에게 신대륙은 약속의 땅 가나안과 같았고, 영국을 탈출한 것은 출애굽과 같은 기적의 사건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대륙을 새로운 영국(New England)이라고 불렀다.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리다
희망을 안고 배에서 내렸으나 그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침 겨울이어서 절반 이상이 추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아메리카 인디언은 이들에게 옥수수 재배 방법을 가르쳐 줬다. 이듬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새로운 땅에서 첫 수확을 얻게 된 그들은 인디언을 초청해 옥수수와 칠면조를 나누며 예배를 드렸다. 1621년 가을, 새로운 대륙에서 감격으로 올려 드린 이 예배는 교회 역사의 첫 추수 감사절 예배가 됐다. 그해 메이플라워호는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그 배에 오르지 않았다. 새로운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언덕 위의 도시
영국 땅에서 불가능했던 모든 일들이 신대륙에서는 가능했다. 가톨릭의 흔적들을 지우고 철저한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예식 중심의 가톨릭 스타일 예배에서 설교 중심의 예배로 변화됐다. 성만찬의 횟수를 점차 줄여 나갔고 성찬이 없는 날은 성찬대 위에 성경을 올려 뒀다. 주일은 안식일과 같이 철저히 지켰다. 주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사 먹어서는 안 되는 목록들을 정했다. 목회자들은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의 삶에 기준을 세워 나갔다. 청교도들은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하게 살며, 정직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언덕 위의 도시’를 건설하기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신대륙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교회와 국가를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로저 윌리엄스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윌리엄스를 추방했다. 남쪽으로 내려간 그는 인디언의 땅에 새로운 마을을 이루고 ‘프로비던스’(Providence)라는 이름을 붙였다. 교회와 정부가 분리돼야 하며 모든 종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아주 낯선 것이었다. 이 사상은 이후 미국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


청교도, 순수의 세대
17세기, 과학과 철학의 영향으로 교회가 약화되기 시작한 유럽과 달리,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는 순수한 신앙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다. 청교도의 신앙적 열정이 교회를 지킨 것이다.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종교개혁의 정신을 지키려 했던 신앙의 수호자들, 영국 왕실의 위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영적인 전사들, 신앙을 위해 기꺼이 낯선 대륙으로 향했던 열정 넘치는 모험가들, 오직 성경을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삼고 국가와 정치의 표준으로 삼으려 했던 성경의 사람들을 역사는 ‘청교도’라고 부른다.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의 모범으로 교회 역사에 빛나는 이들은 존 밀턴의 말처럼 ‘종교개혁을 개혁하는 사람들’이었다.Q



참고 자료: 오덕교,『청교도 이야기』
유재덕,『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Vol.64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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