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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목사의 교회사이야기

제국의 몰락

2017년 07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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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전성시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에 자유를 줬다면, 기독교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였다. 392년, 신실한 기독교인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채택했고, 로마 제국은 명실상부한 기독교 국가가 된다.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묘지에 머물지 않아도 됐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렸으며 교회의 재산이 늘어나면서 교회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교도의 제사를 지내던 로마 신전은 폐쇄됐고,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함으로써 기독교의 예배를 드릴 토대가 만들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자의 이빨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이 교회의 주교가 되면서 신분이 높아졌다. 황제들조차 교회 지도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낮은 자들을 섬기고 죄인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아니었다. 권력을 맛본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회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때 제국의 북방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게르만 족, 대이동을 시작하다
훈 족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했던 유목 민족이다. 중국인들이 농경지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훈 족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372년, 훈 족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볼가 강을 건너 알란 족을 공격했고, 여세를 몰아 고트 족을 공격했다. 훈 족에게 밀려난 고트 족 역시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마치 도미노와 같았다. 게르만 족의 대이동과 함께 유럽 대륙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게르만 족은 좋은 날씨와 비옥한 땅을 찾아 이탈리아, 프랑스, 에스파냐로 진출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게르만 족은 유럽 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대제국 로마의 국경에 도달했다. 로마 제국과 게르만 족은 그렇게 만났다.


이방 민족, 제국을 탐하다
방위력이 약해져 있던 로마는 게르만 족을 만나 당황했고, 게르만 족은 자신감이 넘쳤다. 갑작스레 이방인의 대규모 공격을 받은 로마는 라인 강 전선에서 후퇴했다. 게르만 족의 일파인 반달 족, 부르군트 족, 알레만 족은 로마 국경 라인 강을 건넜다. 서고트 족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일대를 휩쓸었다. 게르만 족의 공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410년에 일어났다. 서고트 족의 왕 알라리크가 이끄는 군대가 로마를 포위한 것이다.


야만족의 왕, 황제를 만나다
알라리크 왕은 로마를 에워싸고 모든 물자를 차단했다. 다급해진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협상에 나섰다. 알라리크는 막대한 금액을 요구했다. 의원들이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실 건가요?”라고 알라리크에게 묻자 그는 대답한다.
“목숨은 남겨 주지!”
이후 호노리우스 황제를 만나 이뤄진 협상도 모두 결렬됐다. 410년 알라리크의 군대는 로마를 공격했고 사흘간 로마를 약탈했다. 800년간 외적의 침략이 없었던 로마에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얼마 후 아프리카로 내려가던 알라리크가 폭우를 만나 갑자기 죽자 로마는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맞설 만한 상대가 없던 최강 제국 로마가 북방 야만족에게 침략을 당했다는 사실로 인해 로마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를 지켜본 세계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더 이상 과거의 로마가 아니었다. 북방 민족들은 상처 입은 늙은 사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이리 떼처럼 로마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제국의 위기
로마 침공의 선봉에 선 야만족은 반달 족과 훈 족이었다. 예술과 문화를 훼손하는 것을 뜻하는 말 ‘반달리즘’(Vandalism)은 반달 족이 로마를 약탈하고 파괴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거침없는 침략자 반달 족은 거센 침공을 계속하며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점령하고 그들의 왕국을 세운다. 훈 족의 아이들은 걷기보다 말 타는 법을 먼저 배운다는 말을 할 정도로 빠른 기동력을 자랑했고, 강력한 활을 무기로 사용했다. 훈 족은 로마의 심장부를 위협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반달 족 지도자 가이세릭은 14일간 로마를 약탈했다.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고 무시하던 북방의 게르만 족은 로마의 군사력을 압도했다.



교회, 제국의 운명을 짊어지다
공포 속에서 계속되는 야만족의 침입으로 서로마는 휘청거렸다. 동로마 황제는 서로마의 위기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제국을 위해 이제 교회가 나설 차례였다. 교회는 야만족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틸라와 레오
아틸라는 훈 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독일에서부터 남러시아와 발칸 반도까지 제국의 영토를 확장시켰다. 아틸라가 이끄는 바람처럼 빠른 훈 족의 기마 군단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452년 아틸라가 로마를 공격했다. 아틸라를 막아선 것은 로마 황제도 군대도 아닌 로마 교회의 주교 레오였다. 아틸라를 만난 레오는 그를 설득했고, 레오의 설득을 통해 훈 족은 말을 돌려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갔다.



제국의 멸망
455년, 이번에는 반달 족이 로마를 침입했다. 레오는 다시 한 번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살인과 강간을 막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반달 족은 로마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로마는 북방 야만족의 침략에 무너져 내렸다.
로마 황제는 더 이상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로마는 이미 게르만 족 장군들의 손 아래에 있었다. 476년, 고트 족의 족장 오도아케르는 즉위한 지 10개월 된 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다. 그것이 서로마의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지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제국은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로마의 멸망과 교회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세상의 권력은 신뢰를 잃었다. 그럴수록 교회는 영적인 권력의 중심이 됐다. 혼란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소망은 교회였다. 제국 곳곳에는 수도원이 등장해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삶의 중심지가 됐다. 로마 제국은 약해졌지만 로마 교회는 오히려 더 힘을 얻었다. 서방 제국은 멸망했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설한 동방의 로마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의 수도로서 여전히 건재했다. 격동의 역사를 지나며 기독교는 더욱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섰다.
그렇게 고대 제국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역사는 기독교가 중심이 된 이 새로운 시대를 ‘중세’라고 부른다. BC와 AD가 나뉘던 때에 교회는 시작됐고, 고대가 저물고 중세가 시작되던 때에 교회는 역사의 중심이 돼 있었다.Q


참고 자료 :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홍익희, 『세 종교 이야기』/ 유재덕,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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