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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목사의 교회사이야기

황제, 기독교인이 되다

2017년 06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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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교회를 싫어해
네로, 도미티아누스, 세베루스, 발레리아누스 황제로 이어지는 기독교 박해의 역사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공직에서 해고했고, 교회를 파괴하라고 지시했다.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무고하게 순교당했다. 4세기, 순교와 박해의 교회 역사에 믿기 힘든 반전이 일어난다.


4명의 황제들
거대해진 로마 제국의 영토는 한 명의 황제가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광활한 영토를 잘 다스리기 위해 두 명의 정황제와 두 명의 부황제가 나눠 다스리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정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부황제인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가 팀을 이뤘다. 305년, 두 정황제가 은퇴하고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가 정황제에 오른다. 정황제 콘스탄티우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가 새 황제로 추대됐다.


하녀의 아들, 황제가 되다
헬레나는 마구간지기 하녀였다.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로마 장교 시절에 헬레나를 만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콘스탄티누스다. 콘스탄티누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됐지만, 콘스탄티누스를 못마땅하게 여긴 막시미아누스는 자기 아들인 막센티우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네 명의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는 황제의 보좌를 두고 맞서야 했다.


밀비아누스 다리 전투
막센티우스는 욕심 많은 폭군으로 악명이 높았다. 로마 시민들은 콘스탄티누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를 공격했고 막센티우스는 이에 맞섰다. 312년 10월,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마지막 전투는 로마 근교의 밀비아누스 다리에서 벌어졌다. 막센티우스는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했기에, 테베레 강을 건너는 밀비아누스 다리를 철통같이 봉쇄하고 콘스탄티누스를 기다렸다. 전투는 강의 북쪽에서 시작됐다.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런데 예상 밖 상황!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막센티우스를 밀어붙였다. 도망치던 막센티우스와 수백 명의 병사들은 테베레 강에 빠져 익사하고 만다.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한다. 환호하던 로마 시민들은 콘스탄티누스의 군대가 낯선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봤다. 새 황제는 다른 황제들처럼 로마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황제의 꿈
전투 전날이었다. 전쟁을 앞둔 콘스탄티누스는 하늘에 있는 십자가를 봤고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는 신비한 음성을 들었다. 다음날 콘스탄티누스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명령에 따라 방패에 표적을 그려 넣었다. 그 표적은 그리스도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의 첫 두 글자인 X와 P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깃발에도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로마군의 상징인 독수리 대신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전쟁에 임한 것이다. 전쟁에 승리한 그는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문명 세계의 군주가 면류관을 벗어서 십자가에 달렸던 나사렛 예수의 발 앞에 놓았다.”                           - 필립 샤프


황제의 회심으로 제국의 종교가 바뀌다
당시 로마 시민들은 제우스, 아폴로, 아프로디테를 포함해 그리스 로마의 여러 신들을 섬겼다. 로마 장군들은 전쟁에 나갈 때 새의 내장으로 점을 쳤다. 북유럽의 야만족이 믿던 우상 숭배의 모습을 로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고, 가축의 신 루페르쿠스를 위한 방탕한 축제와 잔인한 검투사 경기가 로마 곳곳에서 벌어졌다. 기독교 황제의 탄생은 로마에 남아 있던 이 모든 이교도의 악행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이었다. 313년, 황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라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며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로 공식 선언했다.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사실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엄청난 규모의 성당을 짓기 시작했고, 정부는 빼앗았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줬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고위직에 등용됐다. 그리스도인을 괴롭히던 로마의 법령은 폐지됐고,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해방됐다. 일요일은 국정 공휴일이 됐고, 동전에 로마 신들의 초상 대신 십자가가 새겨졌다.


새로운 도시 콘스탄티노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수도, 새로운 로마가 필요했다. 330년, 군사적 요충지이자 상업과 교역이 발달한 매력적인 도시, 그리고 세계 최초의 기독교 도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의 이름은 황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로 정해졌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의 수도가 됐고, 동방 교회의 중심 도시 역할을 감당했다.


황제, 교회 회의를 주관하다
교회는 자유를 얻었지만,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됐다. 4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숙제는 ‘예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분열될 위기였다.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의 교회 지도자인 감독들과 주교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았다. 회의 장소는 황궁이 있던 니케아였다.
325년 7월 4일, 수백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니케아에 모였고, 뜨거운 교리 논쟁이 시작됐다. 아리우스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는 진정한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반대한 감독들은 아리우스파의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회의장은 소란해졌다. 아리우스의 주장에 반대했던 대표자는 아타나시우스였다. 작은 키에 검은 피부를 가졌던 그는 ‘사막의 검은 난쟁이’로 불렸다.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본질을 공유한 세 위격이다”라고 주장했다. 니케아 회의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아리우스가 쓴 책들은 불살라졌고 그 추종자들은 모두 추방됐다. 황제의 주도하에 가장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지켜 냈던 니케아 공의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반전의 역사
337년 5월 22일, 65세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세례를 받고 숨을 거둔다. 로마의 종교를 바꾸고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최초의 기독교 황제의 불꽃같은 삶이었다. 이후 기독교는 변방의 종교에서 제국의 종교가 된다. 로마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가 됐고, 기독교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가 됐다. 역사는 그렇게 반전을 거듭하며 흘러가고 있었다.Q


참고자료 : 필립 샤프, 『교회사전집 3 니케아 시대와 이후의 기독교』/ 유재덕,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Vol.55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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