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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사명을 다지며 걸었던 앗소

2021년 04월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앗소까지 홀로 걸었던 바울

때로는 짧은 본문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때가 있다. 그 일이 비정상적인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행 20:13). 바울은 무리를 보내고 혼자 60km가 넘는 길을 혼자 걸었다. 바울은 먼 길을 왜 혼자 걸었을까? 


절벽 위에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

앗소는 소아시아의 서쪽 끝 무시아 지방의 항구 도시로 지금의 베흐람쾨다. 해발 236m의 언덕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우뚝 솟아 있다. 도시의 정상 아크로폴리스는 화산암의 일종인 조면암으로 된 주상절리 바위 위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다.

아크로폴리스에는 도리아식 검은 돌기둥으로 만든 아테나 신전이 남아 있다. 당시 에게해안을 따라 도리아인, 이오니아인, 아이올리스인이 연맹을 이루며 살았는데, 그중에 아이올리스인에게 지배를 받은 앗소는 서머나와 트로이처럼 아테나 여신을 숭배하는 장소로 유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카데미 번성

앗소에 들어서면 흰색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앗소의 헤르미아스왕은 비두니아 부자의 종이었다가 해방돼 아타르나(현재의 디킬리)와 앗소를 통치했다. 

B.C. 348년 헤르미아스는 플라톤 사후에 떠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앗소에 왔을 때 그를 환대했는데, 이때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3년 후 바사(페르시아)인들의 공격으로 헤르미아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친구인 마게도냐의 빌립왕에게 초청을 받아 떠난다. 거기서 알렉산더대왕을 제자로 삼아 학문과 철학을 가르쳤고, B.C. 334년 바사 정벌에나선 알렉산더는 앗소를 헬라권에 다시 회복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환대했던 헤르미아스의 동상을 델피 신전에 세웠다. 


도심을 형성한 견고한 앗소성

북쪽에서 해안 경사지를 따라 내려가면 서쪽 문에 이른다. 경사로의 서쪽에는 절벽 아래 해안가가 있고, 맑은 날에는 다음 행선지인 남쪽의 미둘레네섬까지 보인다. 앗소는 길이가 3.2km나 되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20m에 이르는 망대도 8개나 발견됐다. 총 12개의 성문이 있는데, 서쪽 성문을 시작으로 체육관, 아고라, 목욕탕, 원형 극장 등이 건립돼 있다.


바울의 결단이 있던 앗소 길

바울은 왜 드로아에서 60km가 넘는 길을 혼자 걸었을까? 바울은 아마 3~4일을 걸으며 3차 전도여행을 결산했을 것이다. 드로아의 환상을 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교회가 세워졌고, 아가야의 고린도교회 또한 혼란 중에도 다시 든든히 서게 됐다.

이렇듯 마게도냐에서의 환상이 실제로 성취됐음을 기억하며, 바울은 생명을 걸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연결하는 일이 복음을 완성하는 일이기에, 성령님께서 알려 주시는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Vol.101 202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