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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아, 복음의 통로로 쓰임받은 곳

2021년 03월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건축물이 가득했던 큰 성 드로아
드로아는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소아시아 북서쪽의 무시아 해안가에 위치한다. 드로아는 9.6km나 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큰 도시로 성문이 4개나 있다. 드로아의 서쪽은 에게해이고 동쪽으로는 원형 망대 성문을 지나 앗소를 향하는 길이 열린다. 남쪽과 북쪽 문 앞에는 죽은 자들의 무덤으로 가득 찬 네크로폴리스가 있다.


안타깝게 왕관을 쓰지 못한 도시
드로아의 고대 이름은 시기아로, B.C. 4세기 안티고누스에 의해 세워져 안티고니아 트로아스(Antigonia Troas)로도 불렸다. 한동안 수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다스렸지만, B.C. 133년부터 로마의 통치를 받아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로 불렸다.
한때 율리우스 시저와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 수도를 이곳으로 옮길 생각을 했고, 콘스탄틴 대제도 같은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드로아는 한때 10만 명의 인구가 살았던 중요한 대도시였다.
드로아가 이처럼 번성했던 이유는 이곳이 지정학적으로 헬레스폰트해협 어귀와 에게해 바닷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선박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에서 무시아를 거쳐 로마로 가려면, 에그나티아 길이 열리는 마게도냐의 네압볼리(네아폴리스)로 건너가야 하는데, 드로아는 이를 위한 최적의 항구였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의 수도를 오늘날의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에 세우면서 드로아는 급속도로 쇠퇴했다.


바울이 결단의 때마다 들른 곳
‘관통’을 의미하는 드로아가 이름값을 하는 때가 왔다. A.D. 49년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바울은 로마의 아시아주를 향해 가려 했지만, 성령께서 그를 드로아로 인도하셨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고, 드로아에서 헬레스폰트해협을 지나 마게도냐로 향한다. 드로아에서 2차 전도여행의 본격적인 사역이 열리고,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3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를 거쳐 고린도에 갔던 바울은 돌아올 때도 드로아에 들렀다.
바울은 이곳에서 늦게까지 말씀을 전했는데, 이때 창문에 걸쳐 말씀을 듣던 유두고가 삼 층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두고는 ‘행운’이라는 뜻으로 당시 노예에게 쓰던 이름이다. 누군가의 몸종으로 고단한 하루를 보낸 유두고는 잠을 쫓으며 말씀을 듣고자 창가에 앉았지만, 결국 잠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즉사했다. 이런 유두고의 사정을 아는 바울은 그를 살려 복음을 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다음 날, 바울은 앗소를 향한다. 아마 이때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죽음의 위협을 직감하며 굳은 결심을 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잠시 풀려나 에베소에 도착해 순교의 각오로 다시 로마로 향할 때도 드로아를 들렀다.
드로아는 바울이 중요한 결단을 할 때마다 들른 도시다. 2차 전도여행 때는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향했고, 3차 전도여행 때는 드로아에서 순교를 각오하며 예루살렘으로 갔다. 마지막에는 드로아에서 로마로 향하는 순교의 길을 걸었다.Q



Vol.100 202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