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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과학 이야기

중세 시대, 과학보다는 신학이지!

2020년 08월 임준섭 목사 (사랑의교회, 분자생물학 이학 박사)

 이번 달에는 중세 시대의 교회와 과학의 역사에 대해 살펴봐요. 중세는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인정한 4세기 무렵부터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말해요. 중세 시대 기독교는 가톨릭을 의미해요. 언뜻 보기에는 현재의 기독교와 비슷해 보이지만, 성경 말씀보다 교황과 사제 등 성직자의 권위가 더 높아서 말씀의 본질과 순수한 신앙에서 멀어지게 됐죠. 그러나 중세 시대의 교회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중세를 교회의 시대라고도 해요. 학문적으로도 하나님을 연구하는 신학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 과학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크지 않았죠.그러나 천 년이 넘는 중세 시대의 과학은 교회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았어요.


신학의 신하, 과학
중세 가톨릭교회는 흔히 ‘수도원적 금욕주의’라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좇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물질세계에 대해서는 가치를 덜 부여했어요. 또 과학을 점성술과 같은 일종의 미신적 마술로 여겨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영적으로도, 지적으로도 과학은 당시에 환영받는 학문이 아니었어요. 모든 학문은 목적이 인간의 신앙을 공고히 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었고, 그 절정의 학문이 신학이기 때문에 과학을 포함한 다른 모든 학문은 신학의 신하와 같은 역할을 했어요.
중세에는 신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문을 모두세속적 학문으로 여겼어요. 당시 학문은 7개로 나뉘었어요. 크게 언어 분야의 3학(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나머지 4학(수학, 기하학, 천문, 음악)이 그것이죠. 지금까지도 이 7개 학문은 대학의 교양 과목(liberal arts)이라는 형태로 의미가 내려오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과 같은 과학이라는 개념의 학문은 중세 초기만 해도 상당히 약했다가 12~13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 철학의 개념으로 발전했어요.


과학, 신학에 영향을 끼치다
그러다 프랑스 파리에서 성직자들과 자연 철학자들이 대립했던 1270년대 이후,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다소 변화가 생겼어요. 물질적인 세계와 비인격적인 신을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영향을 받았던 당시 파리 대학의 여러 교양 교수들이 신학과 같은 수준으로 세속 학문의 위상을 끌어올리려고 시도했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이후 중세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깊이 받아들였고, 신학도 이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대표적인 학자가 스콜라 신학으로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예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 이성의 능력이 아담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손상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아름답게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과학을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긴 학자예요.
또한 성직자 중에도 과학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는데, 프란체스코교단의 사제이며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이기도 했던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 대표적이죠. 그는 현대 과학의 실험적 방법론의 토대를 세운 인물로 평가받아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중세 시대는 신학이 학문의 큰 흐름이었어요. 반면 과학의 역할은 표면적으로는 빈약했죠. 하지만 과학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는데, 이는 자연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어요. 물론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임을 믿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신학이든 과학이든 그 목적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닐 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다음 달에는 하나님의 참된 영광을 회복하는 종교개혁의 시기에 교회와 과학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보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