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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근원이 된 라기스

2017년 10월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세펠라의 중심 도시
예루살렘에서 1번 국도를 따라 서쪽 해안으로 20km 정도를 내려오면 남쪽 벧세메스로 가는 길이 나온다. 삼손과 벧세메스 소가 돌아온 소렉 골짜기를 지나고,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엘라 골짜기와 아사 왕이 구스 군대 100만을 죽인 스바다 골짜기도 지난 후, 세펠라 마지막 골짜기에 자리한 라기스에 도착했다.
라기스 앞에 이르자 우뚝 솟은 인공 언덕이 나를 맞는다. 언덕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넓게 트인 들판이 보인다. 라기스는 남쪽과 서쪽 해변 길에서 오는 적을 막기에 적당한 요새요, 교통의 요충지다.
드넓은 포도원은 이 땅의 비옥함을 보여 준다. 히스기야 때 이곳을 점령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곳 포도원을 자신의 궁전에 그려 놓을 정도로 포도가 유명한 동네다.


시루떡 같은 겹겹의 역사
라기스 성문 왼쪽에 세로로 파 내려간 흙은 마치 시루떡처럼 층이 져 있고, 층마다 번호가 적혀 있다. 그 땅의 한 겹 한 겹은 라기스의 역사를 보여 준다.
라기스는 여호수아 때부터 이 지역의 중심 도시였기에 여호수아는 52km 떨어진 예루살렘에서부터 쫓아와 전쟁을 벌였다(수 10:32). 그때 파괴된 검은 층이 보인다.
솔로몬 이후 나라가 두 동강이 나자 르호보암 왕은 해변 쪽에서 오는 군대를 방어하려고 병거성을 이곳에 세웠다. 서쪽 모서리 부분에서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이 르호보암 시대의 성벽을 발견했다. 당시 사람들이 먹던 올리브 씨앗의 반감기를 통해 성벽이 르호보암 때 세워진 것임을 밝혔다(대하 11:5~11).
히스기야 왕 당시 앗수르가 쳐들어왔을 때도 라기스는 집중 공격당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라기스를 공격하는 동안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산헤립은 라기스를 어렵게 정복하고 뒤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왕하 19:8).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로 앗수르 군인 18만 5천 명이 하룻밤에 죽자, 산헤립은 예루살렘 점령을 포기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 그래서 산헤립은 앗수르 니느웨로 돌아가 예루살렘 전쟁을 빼고 라기스 전쟁만을 그려 놓았다. 이 전쟁의 생생한 기록의 사본은 히브리대학 고고학 도서관에 있고, 진품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라기스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기 전, 마지막까지 버틴 성이었다. 라기스 성문 근처에서 발견된 깨진 토기 조각에 기록된 편지에는 아세가에 이어 라기스가 점령됐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렘 34:7).


유다의 죄 근원, 라기스
강력한 군사 도시 라기스는 발굴할 때마다 히스기야가 곡물을 저장해 뒀던 항아리 손잡이 흔적과 앗수르와 전쟁 당시 사용했던 동그란 물맷돌들이 자주 발견된다. 라기스는 군대의 힘이 집중된 도시였다. 그래서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왕은 반란이 일어나자 라기스로 도망했던 것이다(왕하 14:19).
그러나 유다에서 가장 강력했던 성 라기스도 예루살렘과 유다 왕을 보호하지 못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시 18:2)라고 외친 것같이, 돈과 권력이 나의 요새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나의 피할 바위 되심을 마음에 새긴다.Q

Vol.59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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