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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같은 신앙생활은 이제 그만!

2020년 04월 소문수 목사 (사랑의교회)

부활의 예수님을 경험했나요?
친구들의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세요. 혹시 죄짓고 회개하고, 또 죄짓고 회개하는 일의 반복이지는 않나요? 만약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부활의 예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십자가를 통해 죄 씻음에 대한 믿음과 이해는 가졌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동행이 없는 거죠. 죄가 없어졌다는 것이 곧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과 교제가 있어야 해요. 이번 호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해요.

 

성경 속 ‘부활’이 나오는 구절은?
‘부활’이라는 뜻을 가진 대표적인 헬라어는 ‘아나스타시스’예요. 이 단어는 신약 시대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이를 정확히 설명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없어요. 그러면 구약 시대에는 부활의 개념이 없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대표적인 예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그는 자신이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께서 능히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어요(히 11:19). 그리고 에스겔서에 나오는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나 다니엘 12장 2절의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같은 표현은 부활을 설명하고 있어요.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사건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암시하셨고, 결국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어요. 그리고 이 부활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떨까요? 우선 우리처럼 몸을 입고 계세요. 십자가의 흔적도 육체에 그대로 가지고 계셨고(요 20:27),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시기도 했어요(요 21:15).
하지만 매우 다른 점도 있었죠. 굳게 닫힌 문을 통과해 집 안으로 들어오셨고(요 20:19),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하셨어요(눅 24:31).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셨던 거죠. 그뿐만 아니라 승천하신 후에도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심을 알려 주셨어요(행 7:55).
이런 모습을 통해 예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것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와 동행하며 교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렇듯 부활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고, 또 현재의 내게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에요. 더욱이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을 약속해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요한복음 11장 26절을 보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인간은 다 죽잖아요. 그럼 이 약속은 거짓말일까요? 지난 호에서 살펴본 ‘영생’에 대해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특권을 누리게 돼요. 이 말은 곧,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적 세계라는 다른 차원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에요. 육신의 죽음은 분명 있지만, 사는 동안 영원의 존재인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내가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어요. 이 부활의 믿음을 경험할 때, 우리는 ‘죄짓고 회개하기’를 반복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영원하고 무한하신 존재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교제한다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흥분되지 않나요? 이런 부활신앙을 통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해요.